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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남자에게 보낸 애절한 러브레터 “내 심장은 당신의 사랑으로 인해 피어난 장미입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러브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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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사랑스러운 생명이여, 만약 침묵과 고독으로 상처받은 사람들, 조롱 받은 사람들, 상처 입은 사람들이 당신을 찾아온다면 당신은 그의 상처를 어루만져 치유할 수 있고, 불행으로 뒤덮였던 영혼을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당신에겐 그 어떤 것도 어렵지 않겠지요. 하지만 기억하세요, 나를 살 수 있게 만드는 건 희망, 그 희망 하나 때문이란 것을…

알프레드 더글라스 경에게

1895년


나의 달콤한 장미, 나의 우아한 꽃, 나의 백합 중의 백합이여. 아마도 나는 감옥 안에서 사랑의 힘을 테스트 해볼 것 같습니다. 내가 당신을 품고 있는 사랑의 힘으로 냉혹한 교도관들을 녹여버릴 수 있을 지도 알게 되겠죠. 당신과 헤어지는 것이 현명한 것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아! 얼마나 나약하고 미친 순간이었는지! 그런 순간들이 내 삶을 불구로 만들고, 내 예술을 망쳐버리고, 완벽한 영혼을 만드는 화음을 망가뜨려 버렸습니다. 심지어 진흙을 뒤집어쓰고 있어도 나는 당신을 찬미할 겁니다. 가장 깊은 심해로부터 당신을 향해 울부짖을 겁니다. 나의 고독 속에서 당신은 나와 함께 있습니다. 사람들의 모든 폭압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헌신으로 받아들이려 결심했습니다. 당신의 모습을 영원히 기억하는 한은 내 육체가 더럽혀지도록 놔 둘 겁니다.

비단같이 부드러운 머릿결부터 부드러운 발까지 당신은 내게 완벽해요. 쾌락은 사랑을 숨겨버리지만 고통은 사랑의 정수를 드러내게 하지요. 오, 사랑스러운 생명이여, 만약 침묵과 고독으로 상처받은 사람들, 조롱 받은 사람들, 상처 입은 사람들이 당신을 찾아온다면 당신은 그의 상처를 어루만져 치유할 수 있고, 불행으로 뒤덮였던 영혼을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당신에겐 그 어떤 것도 어렵지 않겠지요. 하지만 기억하세요, 나를 살 수 있게 만드는 건 희망, 그 희망 하나 때문이란 것을. 철학자에게 지혜가 있고 성직자에게 신이 있듯이 내게는 당신이 있어요. 당신을 내 영혼에 간직하는 것은 사람들이 삶이라고 말하는 이 고통의 목적인 겁니다.

오 나의 사랑, 당신은 이 세상 무엇보다도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고, 야생 들판에 있는 하얀 수선화입니다. 당신에게 주어질 짐을 생각합니다. 사랑만이 가볍게 만들 수 있는 그 짐을 말입니다. 당신을 사랑해요, 사랑해요. 내 심장은 당신의 사랑으로 인해 피어난 장미입니다. 나의 삶은 당신의 향기로운 숨결에 둘러싸인 사막이고, 사막의 시원한 샘물은 당신의 눈동자지요. 당신의 작은 발자국은 나를 위해 그늘진 언덕을 만들어 줘요. 당신의 머릿결은 마치 향료와 같아서 당신이 어디를 가든 카시아 나무의 향기를 뿜어냅니다.

나를 항상 사랑해주세요, 나를 항상 사랑해 주세요. 당신은 내 인생의 완벽하고 최고의 사랑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있을 수가 없어요.

서진의 번역 후기

뉴욕 서점을 순례했을 때 웨스트 빌리지의 오스카 와일드 기념 서점을 들른 적이 있다. 동성애 인권 저항 운동의 발상지였던 스톤 월 바가 있는 거리의 끝에 있는 서점으로, 그와 관련된 책 뿐만이 아니라 동성애를 다룬(지은이가 동성애자이든 아니든)문학작품, 잡지, 정치관련 서적을 파는 곳이다. 올해 뉴욕을 방문할 기회가 생겨 그곳을 지나갔는데 서점은 사라지고 옷가게가 들어서 있었다. 작은 서점이 사라지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어쩌면 더 이상 동성애 관련 서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어차피 미국의 대형 서점에는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 보편화 되었을지도 모른다. 동성 결혼을 인정하는 나라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100년도 훨씬 전에 사랑에 빠진 한 인간으로써 동성애 차별에 정면 대응한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없었으면 그 시기가 늦어졌을지도 모른다.


행복한 왕자 같은 환상동화, 정직함의 중요함(Importance of Being Erniest)등의 희곡과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같은 소설 등에서 천재성을 유감없이 드러낸 오스카와일드는 1854년 아일랜드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예술을 위한 예술, 유미주의에 탐닉한 그는 재치 있는 말투와 화려한 패션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다.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있었지만 젊은 더글라스 경을 만나 사랑에 빠짐으로써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는다. 그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고, 호텔을 드나들었다. 이를 참지 못한 더글라스 경의 아버지가 오스카와일드를 풍기문란으로 고소를 하게 되고 그는 감옥에 수감된다.

이 편지는 감옥에 수감된 오스카 와일드가 더글라스 경에게 보내는 편지다. 사전 정보 없이 읽으면 이 편지가 여자에게 보내는 것인지, 남자에게 보내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단지 사랑에 빠진 남자가 쓴 절절한 러브레터일 뿐인 것이다. 비록 감옥에서 중노동을 하고 나와 몸이 쇠약해져 더 이상 좋은 작품을 쓰지 못했더라도, 가족에게도 버림 받고 결국엔 더글라스에게도 버림 받고, 잘 나갈 때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에게도 버림 받아 파리의 허름한 하숙집에서 생을 마감했지만 그는 작품보다 더 큰 것을 남겼다. 그의 삶 자체가 ‘이야기’로 남아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에는 하찮은 이유가 될 차별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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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서진

소설가, 한페이지 단편소설 운영자. 장편소설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로 12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 2010년 에세이와 소설을 결합한 『뉴욕 비밀스러운 책의 도시』 출간. 세상의 가장 큰 의문을 풀 책을 찾아 헤매는 북원더러.(Book Wanderer) 개인 홈페이지 3nightson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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