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남자에게 보낸 애절한 러브레터 “내 심장은 당신의 사랑으로 인해 피어난 장미입니다.”
오, 사랑스러운 생명이여, 만약 침묵과 고독으로 상처받은 사람들, 조롱 받은 사람들, 상처 입은 사람들이 당신을 찾아온다면 당신은 그의 상처를 어루만져 치유할 수 있고, 불행으로 뒤덮였던 영혼을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당신에겐 그 어떤 것도 어렵지 않겠지요. 하지만 기억하세요, 나를 살 수 있게 만드는 건 희망, 그 희망 하나 때문이란 것을…
글ㆍ사진 서진
2012.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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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더글라스 경에게

1895년


나의 달콤한 장미, 나의 우아한 꽃, 나의 백합 중의 백합이여. 아마도 나는 감옥 안에서 사랑의 힘을 테스트 해볼 것 같습니다. 내가 당신을 품고 있는 사랑의 힘으로 냉혹한 교도관들을 녹여버릴 수 있을 지도 알게 되겠죠. 당신과 헤어지는 것이 현명한 것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아! 얼마나 나약하고 미친 순간이었는지! 그런 순간들이 내 삶을 불구로 만들고, 내 예술을 망쳐버리고, 완벽한 영혼을 만드는 화음을 망가뜨려 버렸습니다. 심지어 진흙을 뒤집어쓰고 있어도 나는 당신을 찬미할 겁니다. 가장 깊은 심해로부터 당신을 향해 울부짖을 겁니다. 나의 고독 속에서 당신은 나와 함께 있습니다. 사람들의 모든 폭압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헌신으로 받아들이려 결심했습니다. 당신의 모습을 영원히 기억하는 한은 내 육체가 더럽혀지도록 놔 둘 겁니다.

비단같이 부드러운 머릿결부터 부드러운 발까지 당신은 내게 완벽해요. 쾌락은 사랑을 숨겨버리지만 고통은 사랑의 정수를 드러내게 하지요. 오, 사랑스러운 생명이여, 만약 침묵과 고독으로 상처받은 사람들, 조롱 받은 사람들, 상처 입은 사람들이 당신을 찾아온다면 당신은 그의 상처를 어루만져 치유할 수 있고, 불행으로 뒤덮였던 영혼을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당신에겐 그 어떤 것도 어렵지 않겠지요. 하지만 기억하세요, 나를 살 수 있게 만드는 건 희망, 그 희망 하나 때문이란 것을. 철학자에게 지혜가 있고 성직자에게 신이 있듯이 내게는 당신이 있어요. 당신을 내 영혼에 간직하는 것은 사람들이 삶이라고 말하는 이 고통의 목적인 겁니다.

오 나의 사랑, 당신은 이 세상 무엇보다도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고, 야생 들판에 있는 하얀 수선화입니다. 당신에게 주어질 짐을 생각합니다. 사랑만이 가볍게 만들 수 있는 그 짐을 말입니다. 당신을 사랑해요, 사랑해요. 내 심장은 당신의 사랑으로 인해 피어난 장미입니다. 나의 삶은 당신의 향기로운 숨결에 둘러싸인 사막이고, 사막의 시원한 샘물은 당신의 눈동자지요. 당신의 작은 발자국은 나를 위해 그늘진 언덕을 만들어 줘요. 당신의 머릿결은 마치 향료와 같아서 당신이 어디를 가든 카시아 나무의 향기를 뿜어냅니다.

나를 항상 사랑해주세요, 나를 항상 사랑해 주세요. 당신은 내 인생의 완벽하고 최고의 사랑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있을 수가 없어요.

서진의 번역 후기

뉴욕 서점을 순례했을 때 웨스트 빌리지의 오스카 와일드 기념 서점을 들른 적이 있다. 동성애 인권 저항 운동의 발상지였던 스톤 월 바가 있는 거리의 끝에 있는 서점으로, 그와 관련된 책 뿐만이 아니라 동성애를 다룬(지은이가 동성애자이든 아니든)문학작품, 잡지, 정치관련 서적을 파는 곳이다. 올해 뉴욕을 방문할 기회가 생겨 그곳을 지나갔는데 서점은 사라지고 옷가게가 들어서 있었다. 작은 서점이 사라지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어쩌면 더 이상 동성애 관련 서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어차피 미국의 대형 서점에는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 보편화 되었을지도 모른다. 동성 결혼을 인정하는 나라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100년도 훨씬 전에 사랑에 빠진 한 인간으로써 동성애 차별에 정면 대응한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없었으면 그 시기가 늦어졌을지도 모른다.


행복한 왕자 같은 환상동화, 정직함의 중요함(Importance of Being Erniest)등의 희곡과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같은 소설 등에서 천재성을 유감없이 드러낸 오스카와일드는 1854년 아일랜드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예술을 위한 예술, 유미주의에 탐닉한 그는 재치 있는 말투와 화려한 패션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다.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있었지만 젊은 더글라스 경을 만나 사랑에 빠짐으로써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는다. 그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고, 호텔을 드나들었다. 이를 참지 못한 더글라스 경의 아버지가 오스카와일드를 풍기문란으로 고소를 하게 되고 그는 감옥에 수감된다.

이 편지는 감옥에 수감된 오스카 와일드가 더글라스 경에게 보내는 편지다. 사전 정보 없이 읽으면 이 편지가 여자에게 보내는 것인지, 남자에게 보내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단지 사랑에 빠진 남자가 쓴 절절한 러브레터일 뿐인 것이다. 비록 감옥에서 중노동을 하고 나와 몸이 쇠약해져 더 이상 좋은 작품을 쓰지 못했더라도, 가족에게도 버림 받고 결국엔 더글라스에게도 버림 받고, 잘 나갈 때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에게도 버림 받아 파리의 허름한 하숙집에서 생을 마감했지만 그는 작품보다 더 큰 것을 남겼다. 그의 삶 자체가 ‘이야기’로 남아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에는 하찮은 이유가 될 차별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말이다.

#오스카 와일드 #알프레드 더글라스 #동성애
9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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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

2013.02.27

<나를 항상 사랑해주세요, 나를 항상 사랑해 주세요. 당신은 내 인생의 완벽하고 최고의 사랑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있을 수가 없어요. >
다른 어떤 러브레터보다도 더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진심이 느껴져요. 진심은 장황한 수식으로 치장할 필요가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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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quarid

2013.02.06

"철학자에게 지혜가 있고 성직자에게 신이 있듯이 내게는 당신이 있어요." 절절하네요.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서 사랑에 빠지게 됐는지도 궁금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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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칰

2012.08.22

시대를 앞서나간 진보적인 인물이고 또한 섬세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오스카 와일드! 역시나 러브레터도 아름다운 문장이 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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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

소설가, 한페이지 단편소설 운영자. 장편소설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로 12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 2010년 에세이와 소설을 결합한 『뉴욕 비밀스러운 책의 도시』 출간. 세상의 가장 큰 의문을 풀 책을 찾아 헤매는 북원더러.(Book Wanderer) 개인 홈페이지 3nightson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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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

1854년 영국 지배하의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의사이자 학자였던 윌리엄 와일드와 시인이었던 제인 와일드의 아들로 출생했다. 1874년 옥스퍼드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한 후, 존 러스킨과 월터 페이터의 영향을 받아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기치 아래 그리스 고전문학에 심취하여 ‘유미주의’ 운동의 새로운 리더가 되었다. 옥스퍼드 대학교 재학 중 이탈리아 라벤나를 여행하며 지은 시 「라벤나」로 뉴디게이트상을 수상하면서 작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한다. ‘예술을 위한 예술’을 표어로 하는 탐미주의를 주창했다. 그는 독특한 옷차림과 말솜씨로도 유명했는데 당시 오스카 와일드의 이러한 행태를 조롱하는 희극 [인내]가 발표되어 미국에까지 전해졌다. 그는 이때부터 영국 글램 록의 원조가 되었다. 유미주의의 상징으로 새로운 멋으로써 유행시킨 공작 깃털, 해바라기 장식, 장발, 화려한 벨벳 바지 등을 착용함으로써 새로운 세상을 꿈꾼 서구의 젊은이들을 열광시켰고 자신을 모방하게 만들었다. 오스카 와일드의 유미주의는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1888년에 동화집 『행복한 왕자』를 출판하여 동화 형식의 낭만적 알레고리를 다루는 재능을 보여주었다. 1891년에는 장편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발표하면서 영국 최고 작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동성애적이고 퇴폐적인 내용으로 도덕적이지 않다는 평단의 악평을 받고 수정하여 출간하게 된다. 미모의 청년 도리언이 쾌락의 나날을 보내다 악덕의 한계점에 이르러 파멸한다는 이야기였다. 비평가들은 그 부도덕성을 비난했지만 와일드는 예술의 초도덕적 성격을 강조했다. 와일드가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장르는 풍속 희극으로, 대표작 『진지함의 중요성』(1895)에서는 빅토리아 시대의 위선을 가차 없이 폭로했다. 1891년 출간한 동화집 『석류나무 집』에 실린 단편 「별아이」가 있다. 그리고 시인이었던 알프레드 더글라스와 애정 어린 만남을 지속하다가 더글라스의 부친인 퀸즈베리 후작의 소송으로 작품의 도덕성까지 문제시되고 동성애자라는 혐의로 기소되어 2년간 중노동형을 선고 받았다. 1895년 동성애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2년 동안 레딩 감옥에 수감되고 국적을 박탈당하면서 작가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가 죽은 지 98년이 지난 1998년에야 영국 국적이 회복되고,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오스카 와일드와의 대화’라는 제명의 동상이 세워졌다.